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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 많은 남자는 아름답다

군도:민란의 시대



┃ 첫 관람

최근 일이 많이 바빠져 정신줄을 잡고 있기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지난 달 <그레이스 오브 모나코>를 보러 갔던 날 본 <군도:민란의 시대>의 예고편이 얼마나 강하게 인상에 남았던지, 아니면 호화로운 캐스팅에 쏟아지는 기사로 세뇌되었던 건지 모르겠지만… 마침 이번 주에 개봉이라는 것을 알아채고는 ‘아, 이번 주는 죽어도 군도를 보러 갈테니 야근은 절대 아니된다……!!’하고 얼른 일을 끝내고자 열심히 달렸다.
안타깝게도 결국 영화 보기 전까지 다 끝마치지는 못했지만,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일이야 영화보고 밤 새서 하면 될 것을!하며 영화관에 입성. 버터구이 오징어 다리―L모 멀티플렉스 매점의 ‘달탱이’라는 그것―에 사이다를 들고 처음 <군도>를 보러 갔던 것이 이틀 전이구나. 그날, 영화가 다 끝나고 터덜터덜 귀가하며 나는 무슨 생각을 했던가. 집에 도달하여 마저 일을 시작하기 전까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어떤 정신으로 집까지 왔는지 아직까지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상영관을 나서는 내내 귀신이라도 본 사람처럼 혼이 나가 낮게 탄식을 내뱉었었다는 것이다.

“내용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시놉시스 보고 상상할 수 있는 그 정도입니다. 캐스팅이 화려해서 그런지 주조연급들이 다들 감초 같은 역할로 쉴 틈을 안 주고, 참치님 개짱입니다. 검 쓸 때마다 예술작품을 보는 것 같았어요. 진짜 영화 끝나고 얼이 빠져서 나왔습니다. 또 보러 가려구요.”
군도 보러간다고 하도 여기 저기 자랑 아닌 자랑을 하고 다녔더니, 다들 후기를 묻길래 이리 대답을 하면 대개는 반응이 강동원을 보러 갔구만-이었다. (혹자는 혹시 영화 내용을 이해를 못 해서 또 보는 거 아니냐며 놀리기도 했다.)

이유야 어쨌든, 난 오늘 다시 한 번 <군도:민란의 시대>를 봤다.


※ 이하 내용 중, 스포일러가 다소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 (대책 없이 편파적이고 주관적인) 참치님앓이 주의


┃ 다시 만난 신세계 <군도:민란의 시대>

이 섬에도 비가 마르기 시작하면서 찜통 더위가 찾아왔다. 겨울 이불 두 겹을 덮고 자던, 추위에 약한 자의 대명사인 나도 간밤에 창문을 죄다 열고 거위털 한 겹만 덮고 누워서 괴로워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덕분에 조조로 영화를 보려던 계획은 다 틀어지고, 눈 뜨자마자 땀에 절어서 예전에 보다 말았던 <형사:Duelist>를 다시 켰다. 그때나 지금이나 참치님은 참으로 아름답구나 싶어서 씻지도 않고 옆으로 누워서 눈을 반만 뜨고 있던 스스로가 매우 부끄러웠다. 게으름병이 도져서 밖에 나갈까 말까 고민을 하던 몸뚱이를 움직인 동력은 역시 참치님의 춤추는 듯 유려한 검술이었으니! 참치님은 정말 심장에 나쁜 거 빼곤 만병통치약인 거 같다. (틀려)


영화관으로 향하는 길, 커피를 사러 한량사장님의 카페에 들러 m과 전화를 하던 중 군도를 또 보러 나왔다니 m은 그거 본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금방 다시 보는 거냐며 물었다. 안 그래도 너무 급하게 결정한 감이 있어 다시 보면 조금 지루하지 않을까 걱정을 했다. 근데… 왜죠……? 왜 전혀 지루하지 않고, 137분 러닝타임이 그저 짧게만 느껴지는 거죠?
첫 번째 관람 때는 피로에 절어 있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참치님의 당황스러울 정도로 수준 높은 미색에 홀려서 지나쳤는지, 다시 보니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들리지 않았던 것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김치웨스턴 액션활극이라는 수식어에 잘 어울리게, 당 당다라 당당 당당당 당당당당~하는 레트로한 톤의 기타 사운드는 <장고>와는 다른 느낌으로 바싹 가물어 거칠게 변한 조선땅의 이글거리는 일몰 배경에 착 달라붙었고, 사람 외에도 코스튬, 소품, 카메라 앵글 등 각종 영화적 장치들도 하나 둘 눈에 들기 시작했다. 덕분에 완전히 새로운 영화를 보는 기분이라 다음씬에 무엇이 나올 줄을 대강 다 알고 있으면서도 긴장하고 오히려 더 격렬히 동요했던 것 같다.



와중에 조윤(강동원)은 영화가 끝나는 순간까지 이래저래 깡패급 시선강탈자다. 깐마늘처럼 맨질맨질하고 귀티 좔좔 흐르는 고운 얼굴로도 모자라 환상적인 신체 비율로 탄성이 절로 나오는 무예를 선보이니 사람이 어쩜 저렇게 움직일 수 있을까 감탄이 절로 나온다. (정두홍 무술감독은 “대한민국에서 칼은 강동원이 제일 잘 쓰는 것 같다.”라 할 정도이니. 근데 곤란한 건, 액션활극인데 볼만한 액션이 조윤밖에 없…)
게다가 표정과 눈빛에 감정을 절절하게, 또 절제하여 더없이 섬세하게 보여주는 것 또한 일품이다. 그 눈, 그 눈! 때문에 조윤이 아버지인 조원숙(송영창)에게 그간 수집한 땅 문서를 갖다 바치고도 박대 당하는 것을 보면서 속이 까맣게 타들어갔는데, 하필 아침에 <형사>를 봐서 더 이입한 거 같다. <형사>에서 병판대감으로 나온 송영창 아저씨가 슬픈 눈(강동원)을 오른팔로 부리며 악행을 저지르든 말든, 그는 남순이한테 장부를 몰래 갔다 주고도 마지막까지 병판을 호위했으니 묘한 기시감에 휩싸이게 되는 것이다.



▶ 참치님이 모 인터뷰에서 꽃잎은 그저 미쟝센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 그러나 아무리 봐도 조윤+대검+꽃잎의 환상적인 조합은 신의 한 수다.


마지막으로 도치(하정우)와의 대결을 앞두고 덤비려 드는 군중을 향해 “니들 중 타고난 운명을 바꾸기 위해 생을 걸어본 자는 나서라. 내 그 자의 칼이라면 받겠다.”라고 서늘하고 강하게 내뱉는 조윤의 대사에 심장이 와장창-! 부서지는데……. 그 때부터 입 틀어막고 눈도 제대로 안 깜박이고 조윤한테 시선 고정. 청명한 하늘과 햇빛을 담뿍 받은 대나무숲에서 한 팔에는 끝내 어쩌지 못한 조카를 안고 고고하게 검을 휘두르던 그가 창에 찔려 창백하게 죽어갈 때, 실핏줄이 다 터진 그 두 눈과 찡그린 눈썹이 슬퍼서 정말 오열했다.
옆에서 다른 사람들이 강동원이 어쩌구, 오징어가 어쩌구 하며 상영관을 나가든 말든 엔딩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자리를 뜨지 못하고 흐어규ㅠ휴ㅠ규ㅠ 하고 눈물을 질질. 극장을 나와 길을 걸으면서도 울컥울컥 감정이 북받쳐서 자꾸 얼굴이 찌글찌글 더 못생겨졌다. 그 때 조윤의 눈, 그리고 눈썹.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다. 엉엉…….


┃ 조윤, 사연 많은 남자는 아름답다

영화는 조윤이 그리 삐뚤어진 것이 단순히 사주 상 팔자가 사나워서 그런 것이라기 보단, 어린 시절 사랑 받지 못한 채 외롭고 위태롭게 스스로를 지켜내야 했던 슬픈 시간이 그를 그리 만들었다는 것을 꽤나 구구절절 설명하고 보여준다. 물론 도치가 왜 그리 됐는지에 대해선 영화의 시작부터 그가 도치라는 이름으로 살게 되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가 현재형으로 조명한다. 지리산 추설은 민란으로 세상을 바꿔보겠다고 하나 도치라는 개인을 통해 보여지는 것은 대의보단 제 가족을 죽게 만든 조윤에 대한 복수심으로 움직이는 모습이다. 누구라도 이해하고 공감할 분노건만 무엇 때문인지 어느 순간부터 맥이 툭툭 끊겨 도치의 행보는 목적을 잃은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 때문에 정작 가슴에 콕 박히는 것은 어린 조윤의 과거사다.



조윤은 색주가에서 유년시절을 보내다 대를 잇기 위한 도구로 친부에게 팔려갔으나, 정실부인에게서 태어난 동생 덕에 투명인간 취급을 당한다. 관직에 올라선 따라올 자 없는 뛰어난 무예 실력에도 불구하고 서얼 출신이라는 이유로 출세길이 막혀 결국은 장사치가 되길 선택하여 악랄한 방법으로 나주의 대부호가 된다. 가진 것 많은 이가 더 많은 것을 가지려 드는 것은 지나친 탐욕이겠으나, 그가 욕망하는 것은 물질이 아닌 아버지의 인정과 사랑이다. 그러나 끝까지 뜻을 이루지 못한 채 극단에 내몰려 발버둥치던 조윤은 끝내 패륜을 저지른다. 조원숙의 숨통을 틀어쥔 그의 얼굴은 호적떼를 향해 무자비하게 칼을 휘두르는 귀신같은 얼굴이 아니라 영원한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처럼 애처롭기만 하다.
“더러운 흙에서 흰 연꽃이 피어나는 것은 신의 뜻인가, 연꽃의 의지인가…….” 괴로워하면서도 홀로 남겨져 우는 조카를 품에 안고 고요한 눈으로 내려다보는 장면에서 조윤은 냉혈한 땅귀신과는 거리가 멀다. 어떻게 보면 조윤은 이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입체적으로 묘사된 캐릭터다. 선이 이겼으나 악역이 더 빛났다는 것은 아무래도 참치님이 연기를 했는데, 하필 사연도 많아! 지켜주고 싶은 남자다! 가 크게 작용하지 않았을까.

저녁 식사 때가 한참 지났으나, 허기가 느껴지지 않는 것은 조윤님 때문인가. 지금도 자꾸 한숨이 폭폭 나온다. 어쩐지 가까운 시일 내에 조윤님 영접하러 몇 번 더 보러 갈 것 같다. 아… 오늘 잠은 다 잔 것 같다.



▶ 마지막은 아쉬우니까 <형사:Duelist>의 슬픈 눈 한 장. 이 때는 비교적 유순한 눈으로 조심스럽게 감정을 담아냈었다면 <군도:민란의 시대>의 조윤은 때때로 광포할 정도로 격한 감정을 눈빛으로 표현한다. 상투가 풀려 단오날 창포물로 감아 동백기름 에센스를 바른 듯 찰랑이던 5대 5 흑발 사이로 형형하게 빛나던 악에 바친 눈이 잊히질 않는다.



▶ <군도:민란의 시대> Trailer Movie



영화읽기 | 군도:민란의 시대 (KUNDO:Age of the Rampant, 2014)

자세한 정보는 군도:민란의 시대 공식사이트를 참고해주세요. (모바일에서 접속 시 SHOWBOX 페이스북페이지로 리다이렉트됩니다.)


군도:민란의 시대 (2014)

6.7
감독
윤종빈
출연
하정우, 강동원, 이경영, 이성민, 조진웅
정보
액션 | 한국 | 137 분 | 2014-07-23
글쓴이 평점  


1    0
  • Favicon of http://myahiko.tistory.com 무량수won 2014.11.05 16:54 신고    

    영화를 보지않아서 딱히 할 말은 없긴한데, 중간에 꽃잎과 칼에 대해서는 덧붙일수 있는 말이 있어서 조심스레(?) 남겨봅니다.

    영화상에서는 어떻게 표현되었는지 잘모르겠지만 꽃잎어 떨어지는 특히 하얀색 벗꽃과 비슷한 꽃잎이 떨어지는 곳에서 칼부림을 했다는 것은 과거 90년대 만화나 게임, 애니로 표현되었던 일본 사무라이들이 나타나는 장면의 패러디(?) 혹은 오마주(?) 같은 것일 수 있을 꺼에요. 감독 나이가 몇살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30대와 40대 남자들에게 있어서 꽃잎과 칼 그리고 남자는 딱 그 이미지를 연상시키게 만들거든요. 남자들만이 공감하는 시대적인 문화 혹은 이미지인데요. 그런 일본 문화의 극대화가 된 것이 얼마 전에 욕과 극찬의 사이에서 왔다갔다했던 퍼시픽림이란 영화가 있었죠.

    미국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일본의 만화와 애니 그리고 게임의 전성기였던 90년대였기에 무의식 중에서라도 차용될 수 밖에 없는 뭐... ^^;; 그런 것이라고 보여진요. 아마 보셨던 그 꽃날리는 칼부림도 그런 이미지를 따온 것일 것이라고 조심스레 추측해봅니다. 참고로 남자들에게 사무라이에 대한 이미지가 자리잡고 있다면, 동시대 여자분들은 엑스재팬의 비주얼롹과 스마프로 불리는 일본 남자 아이돌 그룹들이 있지요.